[마음살림편지 20-06] 이즈음 꽃과 나무  

바람불면 웃음소리가 쏟아질 것 같은 여름꽃들 

석류, 홑꽃 채송화, 활련화 

 

저녁노을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날이 무척 덥네요. 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눅눅하기도 하고요. 이런 때 일수록 햇볕이 따가운 오후에 동네를 한 바퀴 돕니다. 그늘을 찾아 걷다보면 가끔 담 밖으로 뻗어 나온 석류나무가 보여요. 진한 초록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숨은 듯 박혀있는 꽃이 올해는 유난히 많이 보이네요.

고향인 이란의 뜨거운 볕을 그대로 담아 온 것처럼 주홍과 빨강이 섞인 윤이 나는 봉오리부터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 터질 때까지 매 순간이 이렇게 예쁜 꽃은 드물지 않을까요? 점차 주홍색과 노란색이 스며드는 씨앗 모양 또한 볼록한 복주머니처럼 예쁘지요. 열매가 터질 때면 소리가 안 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쩍 갈라지고 그 안에 시고도 단,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맛있는 씨앗이 가득합니다. 너무 예뻐서 보석 같다는 표현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그 양 또한 생각보다 많아 석류는 다산의 축복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요즘은 천연식물성 에스트로겐 함량이 많아 여성을 위한 과일이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시인 정지용이 쓴 “석류”라는 시에 입춘 때 먹는다는 구절이 있는 걸 보면 아마 늦가을에 딴 열매를 잘 갈무리해서 두고두고 간식으로 먹었나 봅니다.

5~60년 전,  집들이 대개 주택이던 시절, 집집마다 조그마한 마당이 있던 때를 떠 올리면 부록처럼 따라오는 풍경이 있답니다. 집집마다 작으나 크나 장독대가 있고 매일 마른 행주로 닦아 얼굴이 비칠 정도로 정갈한 장독 틈새로 고개 내민 꽃들. 채송화와 백일홍은 그냥 두어도 잘 퍼져 집집마다 있었지요. 게다가 채송화는 꺾꽂이로도 잘 살거든요. 지금처럼 개량종이 아니라 홑꽃이었는데 어찌나 색들이 곱고 선명한지 바람이라도 불면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니까요. 꽃분홍, 노랑색이 대부분이고 초록 잎과 어울려 있으니 설빔이나 추석빔으로 만들어 주시던 때때옷이 생각나는 꽃이기도 해요. 워낙 서양 꽃들이 예쁜 게 많아 그런지 한 동안 볼 수 없던 이 꽃들을 요즘 겹꽃으로 개량해 길가나 공원에 심기도합니다. 겹꽃도 예쁘지만 어쩐지 홑겹 꽃이 더 정답고 단아해 보이는 건 순전히 어릴 때 추억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제가 몹시 사랑하는 활련화도 지금부터 피기 시작해 11월 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 피고 집니다. 아파트에 사는 저는 오래도록 1년에 두 번 심어 설에도 흐드러지게 핀 활련화를 보는데요, 씨앗을 심으면 발아율이 높거든요. 노랑, 주황, 주홍, 자주색 등 밝은 꽃과 마치 연잎같이 생겨 물을 튕겨내는 잎사귀의 조화가 정말 예쁘답니다. 지난 가을에 심어 설 무렵 절정을 이루고 4월 말 경 화분정리를 했어요. 그리곤 좀 쉬었다 6월 초에 붓으로 인공수정해서 얻은 씨앗을 심어 이제 본 잎이 나오기 시작이니 아마 추석 즈음엔 또 화분이 보이지 않게 무수한 꽃을 피울 거예요. 이를테면 제 나름의 명절을 맞이하는 자세라고 할까요.^^

꽃집에서 우연히 만난 캐나다에서 온 호텔 주방장이 활련화 씨앗이 자기의 맥주 안주라며 추천하기에 먹어 봤는데 매콤해서 겨자 맛이 났어요. 씨앗이 너무 많을 땐 간혹 먹기도 하지만 역시 제게는 우리 땅콩이 더 맞더라고요.

이래저래 답답해서 이따금씩 선뜻 부는 바람이 새삼스레 고마운 나날들,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