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편지 20-07] 이즈음 꽃과 나무

달빛이 있든 없든 밤 산책길에 반가운 달맞이꽃

 

비가 오지 않아도 하늘이 낮게 깔리는 날에는 유난히 밝은 색 꽃에 눈길이 가는데요, 우선 어딘가에 의지해 타고 올라가며 피는 능소화가 있네요. 나무든 철망이든 하다못해 시멘트 전선주에도 몸 기대어 오르며 주황색 꽃을 많이 피우지요. 얼핏 보면 예쁜 꽃 기둥 같답니다. 늘씬한 원추리, 종류도 다양한 나리, 이름도 예쁜 비비추, 여전한 기세의 장미와 수국 등 눈길 닿는 곳 어디나 꽃이 가득합니다. 텃밭에는 흰색과 푸른색이 섞여 청초한 도라지꽃도 한창입니다. 좀체로 보기 힘들어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는 보랏빛 고구마꽃과 열매 맛이 블루베리와 비슷한, 앙증맞은 흰 꽃의 까마중도 보이구요. 예전엔 온통 씨앗으로 가득 찬 그 작은 열매를 입술이 검게 물들도록 따먹기도 했지요.

낮에 돋보이는 꽃들도 좋지만 이즈음 제가 제일 반기는 꽃은 ‘달맞이꽃’입니다. 이름처럼 달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해가 지고 저녁빛이 내려앉을 즈음 달이 뜨든 말든 오무렸던 꽃잎을 열기 시작하는 꽃이죠. 가로등이 없고 달도 뜨지 않는 밤이라도 달맞이꽃은 자기를 잘 찾아오라는 듯 은은하고 향긋한 냄새를 함께 뿜어냅니다. 한 아름 꺾어 방으로 들이면 약간 맵싸한 기운이 감도는 상쾌한 향기에 금세 방안 사람이 물들 지경이라니까요. 그래도 역시 달맞이꽃은 달빛 아래서 볼 때가 제일 예쁘답니다.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일단 달이 떴다면 무리를 이룬 노란 얼굴들이 보이죠. 달빛 아래서도 잘 보이라고 노란색인가 봐요. 너무 진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아 수채화처럼, 해맑은 아이처럼 보입니다.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 마법, 마력. 온통 신비하고 매력적이어서 듣기 만해도 마음이 설레네요.

달맞이꽃은 칠레가 원산지인 두해살이 귀화식물인데 한방에서 뿌리는 월견초, 씨앗은 월견자라고 인후염이나 고지혈증 약재로 쓰지요. 씨앗에 감마리놀렌산 성분이 많아 여성 갱년기 증상 완화와 염증 억제, 아토피 등 피부에 좋다고 알려져 한동안 높은 인기를 누렸어요. 영국에서는 국민건강보조제라더군요. 감마리놀레산은 천연에는 모유와 달맞이꽃 씨앗 짠 기름 외에는 없다고 해요.

요즘은 원예용으로 개량되어 봄부터 피기 시작하는 낮달맞이꽃이 많이 보이지요. 노랑과 분홍색 꽃도 훨씬 크지만 키는 작게 개량돼 무리지어 심으면 아주 예쁩니다.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식구를 불리기 때문에 금방 풍성한 꽃밭을 이루는 효자입니다. 이제 아무데나 흔하던 예전 달맞이꽃은 차츰 보기 어려워요. 아마도 키가 커서 곧잘 쓰러지고 모양이 정돈된 맛도 없어서 세력다툼에서 밀리는 모양이에요. 야생초 요리를 연구하는 분 말로는 뿌리를 튀겨먹으면 맛있다던데, 뿌리가 곧고 깊게 뻗어 도구 없이는 캐기가 어렵더라구요. 나중에 마당이 생기면 꼭 해 먹어보고 싶답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밤 산책을 나섰다가 어디선가 맑고도 향긋한 냄새가 나면 달맞이꽃을 찾아보세요. 소원도 빌어 보시고요. 정말 마법처럼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 밤에 피는 달맞이 꽃                                                                              * 개량종인 낮달맞이꽃

 

저녁노을 (윤선주, 한살림 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