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편지 20-07] 이즈음 마음닦기

영혼의 자리 : 병아리 이야기

시골에 살아도 ‘병아리’라는 생명체를 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가끔 유정란 농장의 폐계를 몇 마리 얻어다 닭장에 두고 제 명대로 오래 키우는 게 고작인 우리집에서 올해는 애기 조막손만한 병아리들이 수시로 태어났습니다. 작년에 얻은 몇 마리 어미닭들이 봄이 되면서 갑자기 한 마리씩 알을 품은 것입니다. 알 낳는 둥지에서, 생태화장실 톱밥 위에서, 번갈아가며 품는 바람에, 물이며 모이를 챙기느라 뒷바라지하기도 은근히 바빴습니다.

병아리가 깨어나면 20일을 꼼짝 안 하던 어미닭이 드디어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아기 닭이 아예 어미 날개 품 속에 숨어 어쩌다 한 번씩만 고개를 내밀고 나옵니다. 이동을 할 때도 날개 깃 속에 든 채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쥐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맹랑하고 발랄한 개도 있고, 산짐승들도 도처에 있는지라 병아리가 무사한지 수시로 수를 세어보는데, 어미 깃 속에서 안 나오는 바람에 없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란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우리 닭들 중에, 겁이 많고 새침해 도무지 사람을 안 붙여주고 피하기만 하던 비둘기같은 회색닭이 한 마리 있습니다. 사람만 보면 풀숲으로 도망가던 그 회색닭은 얼마 전, 인간과 개와 고양이의 눈을 피해 어느 구석에서 혼자 알을 낳고 품고는 어느날 갑자기 아홉 마리나 되는 병아리를 깃 속에 숨겨서 마당 구석에 나타났습니다. 분명히 어디선가 알을 품고 있을 것 같아 모이라도 챙겨 주려고 창고 안, 덤불 속, 개울 구석 온 데를 찾아도 끝내 못 찾았는데 장하게도 혼자 잘 지켜서 아기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병아리들을 데리고 먹이를 찾아주는 회색 닭은 그 전의 수줍고 겁많던 모습을 지우고 며칠 사이 당당한 ‘어미’의 자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미는 이제 병아리들을 가르칩니다.
“애들아, 먹이는 이렇게 먹는 거란다.“
”발톱으로 이렇게 흙을 파헤쳐 봐. 요렇게 씨앗도 나오고 벌레도 나오지? 자 먹어 봐!“
온종일, 어미닭은 땅을 파헤치고 풀숲을 헤치며 보여 주고 먹기를 재촉합니다. 하루 하루 좀처럼 크지 않을 것 같던 노랗고 하얀 솜털 병아리들이 어느 결에 씩씩하게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병아리가 되고 날개도 모양이 잡혀갑니다. 여린 겉모습과 달리 우렁차게 ’삐약!‘하는 목소리에는 힘찬 생명의 약동이 실려 있습니다. 아동기를 벗어난 가출 청소년 들처럼 고만고만한 크기들끼리 뭉쳐 다니며 스스로 해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어미는 자식들을 과감히 떠납니다. 모른 척 외면하고 다른 암탉들이나 수탉과 다시 무리가 되어 느긋하게 자기 삶으로 되돌아 갑니다.

하지만 아직 아기인 햇병아리들은 따뜻한 볕 아래, 엄마가 가르치는대로 먹이를 찾아먹고, 조그만 주둥이로 물도 몇 모금 마시고, 양지쪽 짚단이나 모래흙 속에 엄마를 끼고 앉아 꼬박꼬박 졸기도 합니다. 저절로 숨을 모으게 되고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병아리의 노오란 솜털과 어미닭의 자애넘치는 온전한 보살핌의 모습에는 그 자체로 순전한 평화와 근원의 고요함, 당연하고 담담하나 지고한 사랑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 시공에 함께 머물러 있으면 내 손이 저절로 가슴께로 갑니다.

영혼의 자리.
나의 영혼이 따뜻하고 밝게 빛나는 곳.
나의 호흡과 심장박동을 확인하며 생명을 실감하고,
가슴이 따뜻하게 열리고 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가슴에 의식을 집중하고 가슴 내부에서 태양이 찬란하게 빛을 발산하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태양처럼 환하고, 따뜻하고, 눈부신 빛을 상상하고 가슴으로 느낍니다.
가슴에 의식을 집중하고 가슴 내부에 있는 황금빛을 떠올립니다.
눈부신 빛에 젖어 바라봅니다.
가슴에서 영혼이 빛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 빛이 몸 밖으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자상慈祥(정현숙, 마음살림연구위원장)